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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일로 와 봐.”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뜬금없이 인상을 찌푸리고 저를 부르는 김태형에 터덜터덜 김태형의 앞으로 걸어갔다. 왜. 화장실에서 어기적어기적 기어 나오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김태형이 ‘너 솔직하게 말해.’ 라는 운을 띄우고는 한참 뜸을 들였다. 불러다 세워놓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김태형에 나는 바닥을 발로 차며 짜증을 냈다. 뭔데 사람불러다 놓고? 빨리 말해라. 사투리 억양이 잔뜩 섞인 나의 말을 들은 김태형은 고개를 숙이고 제 뒷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아이 씨…진짜."

“말을 해라 말을.”

“너 요즘 오줌 잘 안 나오지.”

 

뭐? 예상치 못한 말에 적잖이 당황한 내 모습을 보더니 김태형이 한숨을 거하게 내쉬고 말을 이었다. 아니 너 요즘 화장실 다녀올 때마다 안색이 안 좋길래. 화장실에 오래 있는게 아닌 걸로 봐서는 똥 싸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럼 변비는 아니라는 건데. 술술 이어 나오는 나를 감시한 듯한 말에 벌레라도 씹은 표정으로 놈을 바라봤더니 ‘아, 직업병. 직업병. 너도 잘 알잖아 나 무슨 일 하는지.’ 하고는 마구 손사래를 쳐내보였다. 내 표정을 슬쩍 살피던 놈은 다시 쭈뼛쭈뼛 말을 꺼냈다. 진짜 눈 딱 감고 한 번만 나 믿어봐라 어?

 

“뭘 믿…”

“내가 하는 말에 대답만 하면 돼. 예스 올 노. 알지? 덧붙여서 증상까지 말해주면 땡큐고.”

“아니 그러니까 뭘…!”

“너 요새 오줌 잘 안 나오고 싸도 좀 남아있는 것 마냥 찝찝하지 않아?”

 

김태형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지금 나의 증세와 똑같은 증상들에 입을 꿀 먹은 벙어리마냥 다물었다. 김태형은 비뇨기과 의사였다. 그럼 저 새끼가 말하는 증상들은 다 그쪽 일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꽃다운 이십대에 비뇨기과에 들락날락해야 하는 중한 병에 걸리다니 부산 사나이 자존심이 말이 아니었다. 내가 입만 꾹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하자, 괜찮으니 말하기 싫으면 고개라도 끄덕여 보라며 날 환자 다루듯 말하는 놈 때문에 귀 끝까지 화끈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말을 하지 않으면 끝까지 몰아붙일 놈이란 것을 몇십년지기 친구를 하며 아주 잘 알고 있기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나에게 대하는 것과 다른 분위기로 놈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그럼 요새 허리 쪽이 아프다거나 하반신 쪽에 통증 같은 거 느낀 적 있어?’ 하며 또 질문을 해왔다.

 

“허리…정확히는 잘 모르겠는데 저번주인가 그때부터 아팠어.”

 

어느샌가 김태형에게 증상들을 술술 말하고 있는 나를 깨달았지만 이미 한참 늦은 후였다. 허리가 아픈게 책상에 오래 앉아 있어서 그런 줄로만 알고 편집장님을 엄청 까댔었는데 내가 병에 걸려 서였다니.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이놈의 김태형은 질문을 쉬지 않고 해댔다.

 

“요즘 아침에 발기 잘 안되지.”

“야, 이건…”

“아 빨리. 솔직하게 말하라고 했지. 자존심 부리지 말고 말해라 부끄러운 거 아니니까.”

“아 씨…어.”

 

끝내 나는 수치심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 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솔직히 진짜 갓난쟁이 때부터 알고 지내온 불알친구라 홀라당 벗고 집안을 같이 돌아다녀도 그다지 쑥스럽다는 감정이 생기지는 않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자존심이 걸려있는 걸 함부로 쿡쿡 찔러대다니 이건 정말 두더지마냥 땅이라도 파서 그 안에 숨고 싶을 정도였다. 아니 이 감정을 표현하기에 이 표현은 약했다. 정말 딱 죽고 싶었다. 이것도 한참 순화시킨 말이었다. 아, 무교지만 이럴 땐 신이라도 찾아 헤매고 싶다 정말. 심각하게 나를 쳐다보던 김태형이 뭐라 중얼중얼 거리더니 나를 향해 눈을 치켜떴다. 삼백안과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는 티존을 맞닥뜨리자 그 와중에도 새끼, 참 잘생기긴 잘생겼다.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너 우리 병원 어딘지 알지.”

“…그건 왜!”

“야, 너 하루 빨리 검사 받으러 와라. 이거 아무래도 전립선염 같은데 내가 친구 할인 해줄게.”

 

그렇게 말하고 코를 찡긋거리며 내 어깨를 툭툭 치고 가는 놈에 정신이 새하얗게 물들지만 않았으면 나는 계속 놈이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을텐데 말이다. 시발 존나 위급한 것 마냥 막 화장실에서 나온 사람 불러 세웠으면서 뭐? 시간나면 자기 병원으로 오라고? 화남도 잠시,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김태형의 전적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전작 샘플본을 수정하러 편집실에 찾아간 나를 따라와서는 부끄러움이나 민망함 따위는 개나 줘 버린 듯 너무도 당당하고 뻔뻔스럽게 동네방네 비뇨기과 의사란 걸 자랑하고 다니던 놈의 모습이 뭉게구름처럼 내 뇌를 떠다녔다. 그와중에 또 저와 내가 친구란 것을 강조하고 싶었나본지 나중에 자기네 병원에 오면 내 지인이라고 특별히 싸게 해주겠다며 아주 해맑게 편집실을 헤집고 다녔었다. 그 곳에 여성 직원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신경도 안 쓰이나본지 무작정 얼마 안 남은 머리가 희끗거리는 연세가 지긋하신 직원 분들의 손목을 덥석 덥석 잡아대며 어디 불편한데는 없으세요? 하고 물어보는데 그게 또 악의적인 물음이 아닌지라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김태형의 옆구리만 찔러댔었다. 그날 붉으락푸르락 민망해하시는 직원 분들의 안색을 보는 내가 더 쑥스러웠다. 제 딴에는 순수하게도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아마 아직까지도 자신이 뭘 잘못한지 모를 것이다. 이렇게 눈치라곤 밥에 쳐 말아먹은 김태형이 어떻게 의사가 됐는지는 정말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게… 생각해보니 또 울컥 화가 치솟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태형의 병원에 가는 건 진짜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열심히 소파에 파묻혀서 전립선염 치료비용을 인터넷에 검색하던 나는 핸드폰을 든 손을 떨구고 말았다.

 

“시발… 왜 이렇게 비싸.”

 

미친 거 아니야? 라는 물음이 나오는 가격이었다. 무슨 진료 몇 번에 이만큼이나 받아가는 건지. 아주 도둑놈들이 따로 없었다. 물론 현재 거지나부랭이인 나의 주관적인 시점에서 하는 말이었다. 사실 돈을 못 버는 작가는 아니지만 며칠 전에 큰 맘 먹고 지른 suv로 내 통장잔고는 바닥. 완전 텅텅 이었다. 그래서 먹을 것도 못 먹고 입을 것도 못사 입고 그랬는데 이 금쪽같은 돈을 고작 전…, 그래 그 치료비용으로 써야한다니 진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전립선염에 관해서 마구 검색해 본 결과 오래 앉아있거나 꽉 조이는 바지를 많이 입어서 걸린 것 일지도 모른다는데 이정도면 회사에 책임이 90% 정도 있는 건 아닌지. 정말 진지하게 손해배상을 청구할까 고민했다. 시도 때도 없이 매일 득달같이 전화가 와서 원고는 얼마나 완성되어있냐 지긋지긋하게 물어오던 편집장님이 떠올랐다. 그 꼬쟁이 때문에 한 시라도 의자에서 엉덩이를 제대로 때낸 적이 없다. 실실 웃으면서 얼마나 사람을 갈궈대는지 지긋지긋해서라도 빨리 원고를 넘겨버리는 게 속 편하지 계속 붙들고 있다가는 정말 노이로제가 걸려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죽어도 김태형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일단 뻐기고 보자. 뭐라도 되겠지. 그런데 그렇게 방치했던 게 잘못이었다면 잘못이었는가 보다.

 

놈도 그 말을 하고 나서는 또 잊어버렸는지 별말을 하지 않기에 나도 조금 더 있다가 봐야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수도 있겠지. 라며 그렇게 치료를 미뤘었다. 미루다 보니 하루에 화장실을 들락날락 하는 횟수가 많아졌긴 했지만 그래도 물을 많이 마셔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오늘에서야 일이 터지고 말았다.

 

새벽에 묵직하게 느껴지는 용변 때문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어났는데, 졸린 와중에도 아래가 아릿한 감각이 느껴져 잘 떠지지 않는 눈을 하고서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변기 앞에서 오줌을 싸는데 뭔가 그날은 느낌이 이상했다. 평소라면 잘 보지 않을 변기 안을 들여다 본 것도 그 이유였다.

 

“씨발. 이게 뭐야.”

 

변기 안을 채우고 있던 것은 오줌이 아닌 새빨간 붉은 피였다. 그제야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아, 내일 김태형 불러야겠다.

 

 

 

 

✻ ✻ ✻ ✻

 

 

 

 

 

“내가 뭐랬냐? 빨리 우리 병원 찾아오라고 했지.”

“아니…. 좀 바빠서,”

“바빠서? 너 그러다가 평생 시들시들하게 살 수도 있는데 고작 바빠서 병원을 안 왔다는 게 말이 돼?”

 

존나 빨리 치료를 받지 않으면 생기는 대참사를 적나라하게 열변을 토하듯 말하는 김태형에 나는 머리가 다 아파올 지경이었다. 아오 새끼. 평소에 말 할 때는 얘가 한국인이 맞는 건지, 정확히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있긴 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옹알이를 하더니 갑자기 프로강사가 됐다. 가만히 두었다간 침까지 튀길 것 같아 황급히 맥을 끊어야 했다.

 

"야, 야… 막 가만히 놔두면 괜찮아지고 그런 건 없냐?“

 

김태형의 두 눈이 아주 놀란 토끼마냥 크게 떠지는 걸 보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입을 잘못 놀렸구나.

 

"괜찮아진다고? 야 너 이미 피 싼 거 보면 모르겠냐. 전립선염은 방치한다고 나아지는 그런 병이 아니야! 오죽하면다 늙어서도 전립선 치료한다고 비뇨기과에 들락날락하는데 너 더 오래 놔두면 전립선마사지로 끝나는 게 아니라 수술해야한다?“

 

아주 김태형이 좋아하는 뭐였더라, 그, 싸이ㅍ 어쩌고 쨌든 어떤 힙합 노래처럼 우다다다다 말을 뱉는 놈을 심드렁하게 바라보고 있던 내 숨이 멈췄다. 수술이라니. 방금 놈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정녕 수술이 맞는가. 수술이라면 아주 경기를 일으키는 나였다. 바야흐로 내가 초등학생 때.(그때도 김태형과 함께 놀고 있었다. 진짜 징글징글한 새끼.) 사실 정확히 뭘 하고 논 건지는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넘어져서 얼굴을. 정확히는 입을 땅에 쳐 박았다는 건 기억난다. 입술이 찢어져서 공포스럽게도 입술을 몇 십 바늘이나 꿰맸었지. 꿰멘 부분이 아물도록 연고를 발라줬어야 하는데 입술 안이 찢어진 거라 의도치 않게 연고를 계속 먹게 됐었다. 고작 열 손가락으로 나이가 세어지는 꼬맹이 시절 맛있는 걸 먹는 낙으로 삶을 살아가던 내게 형용할 수 없는 씁쓸한 연고 맛이 나는 희어멀건 죽만 3주가훨씬 넘도록 줬었다. 진짜 이때부터 ‘수술=좆같은 것’으로 정의돼서 고래 잡을 때도 울고불고 발버둥 치다가 까무룩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아니 그렇게 수술을 좆같아 하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 김태형이 지금 내 앞에서 수술을 하니 마니 운운하는 것인가.

 

"미쳤냐? 수술은 절대 안 돼."

 

아 그럼 어떡하라고. 그럼 이번 주 안으로 병원 오던지. 자꾸 수술을 해야 한다며 나를 다그치는 김태형에 나는 점점 초조해져갔다. 진짜 병원 같은 곳 죽어도 가기 싫었다. 심지어 그곳이 김태형이 일하는 직장이라면 말이다. 야, 그럼 나 예약 잡아놓는다? 썩어가는 내 표정을 보고는 어깨를 툭툭 치며 임마, 돈 때문에 그래? 괜찮아 내가 말 잘해둔다니까 글쎄. 하며 자신만 믿으라는 듯이 지 가슴팍을 텅텅 치는데 아니 이 인간아 그거 때문에 내가 이러고 있는 거라구요. 진짜 쪽팔려서 나 3년 동안은 독수공방해야 할지도 몰라. 진짜 예약이라도 할 듯이 전화기를 꺼내드는 놈에 나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었다. 무작정 뭔갈 하려는 김태형의 손을 붙들고 봤다. 이판사판이다.

 

…야, 니가 집에서 해주면 안 되냐?"

 

"뭐?"

"전립, 씨…그거 치료. 니가 집에서 해달라고! 쪽팔려서 병원 못 가겠으니까."

 

순간 김태형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나보고 니 전립선치료를 하라고? 멍한듯한 김태형은 안중에도 없는 나는 그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 의사라며. 그럼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거 꼭 병원에서 해야 하는 거 아니잖아. 전립선 마사지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나는 뭣도 모르고 주절주절 입을 놀렸다. 김태형은 손에 땀이 차는지자꾸 제 손을 만져댔다.

 

"아니, 나는…너 다른 선생님께 맡기려고 했지….'

"왜 니 친군데 딴 쌤한테 맡겨? 너 알고 보면 돌팔이 이런 거 아니야?"

 

당황하며 말을 더듬는 김태형에게 내가 빈정대듯 쏘아붙이자 그건 또 자존심이 상하는지 아니거든 내가 얼마나…! 하면서 발끈하더니 말을 흐렸다. 그것을 놓치지 않은 내가 그것을 물고 늘어지며 왜 새꺄. 너 잘한다며~ 니가 해주면 되지. 하며 한껏 비아냥댔다. 자존심이 꽤 센 것을 알기에 김태형이 도발에 금세 넘어올 것을 안 나의 꼼수였다. 그런 놈 치곤 이번에는 꽤 오래 망설이더니 결국 한숨을 쉬고 그래도 소변 검사는 해야 해. 한다.

 

아싸! 신난 나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보던 김태형은 내가 너 생각해서 일부러 딴 쌤 붙여줬더니… 하, 됐다. 하곤 내일이든 모레든 병원 잠깐 들려서 검사하고 결과 나오면 바로 전화할 테니까 집 비워놔. 라며 오른손으로 머리를 탈탈 털더니 가버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전혀 몰랐었다. 그저 병원에 안 가도 된다며 좋아라 했을 뿐. 김태형이 왜 굳이 친구인 나를 다른 선생님께 진료를 맡겼을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김태형이 내 진료를 맡아준다고 했을 때부터 나는 긴장이 풀려 그 뒤로는 진도가 쭉쭉 나갔다. 뭐 한 번 보고 안 볼 사람들인데 소변검사야 참을 수 있는 수치감이었다. 그 다음날 바로 찾아가 소변검사를 받았는데 그때 슬쩍 훔쳐본 의사가운을 차려입은 놈이 꽤 멋있었다. 역시 이래서 일하는 남자가 멋있다고 하는구나, 깨닫고 나도 글쓰는 모습이 멋있겠거니 생각했다. 알 수 없는 근자감에 빠져 나는 스쳐지나가는 환자들이 모두 상기된 얼굴로 어기적어지적 병원을 나가는 것을 세심하게 살필 겨를이 없었다. 박지민님- 그런 나의 생각도 잠시 나는 나를 부르는 소리에 생각을 멈추고 접수대로 향했다.

 

"끝났나요?"

"네, 검사 끝났구요. 나중에 김 선생님께서 따로 연락드린다고 하셨으니까 오늘은 그만 가보셔도 돼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대로 병원을 나가면서 김태형의 안색을 살폈는데 놈이 답지 않게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김태형은 전에 무슨 공사를 하는지 밤새 뚱땅 뚱땅거리던 옆집이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잠을 한숨도 못 잤던 나에 비해 세상에 자기만 떨어져서 무슨 고요 속에서 자는 것 마냥 꿀잠을 잤던 놈이면서 잠을 설쳤는지 다크서클이 아주 턱 밑에 붙어있었다. 김태형이 병원을 나가는 나를 지켜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재수 없게 한숨은 또 왜 쉬어?"

 

엿 같게도 내 얼굴을 보고 한숨을 쉬는 것처럼 느껴져서 순간 분노가 울컥 올라왔지만 침착하게 가라앉히고 병원 밑 서브웨이를 포식했다. 스윗 칠리소스에 할라피뇨, 피망, 올리브는 빼고 피클은 듬뿍 넣어서. 초딩 입맛이라 놀려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난 시대의 쾌남이니까. 뭐 이딴 생각을 하면서 전투적으로 씹어 먹었던 것 같다.

 

[검사결과 나왔어]

 

[전립선염 맞으니까 내일 집 비워놔]

 

저녁 즈음에 예능을 보며 캔 맥주와 함께 오징어를 질겅거리다 진동소리에 꾸물꾸물 문자를 확인했다. 진짜 집에서 해주려는가 보네. 뭐 이럴 때 보면 얘를 친구 삼길 잘한 것 같기도 하고. 잘 뜯어지지 않는 오징어 때문에 새끼손가락으로 대충 ㅇㅇ만 보내고 핸드폰을 멀리 치웠다. 소파에 누워서 뒹굴거리다가 ‘솔직히 여기에 새우깡이 빠지면존나 섭섭하지.’ 란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여기까지가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까 나는 식탁에 엎어져서 침을 흘리고 있고 초인종이 정신없이 온 집을 울려댔다.

 

"박지민!!! 씨발 집에 없냐. 새끼야?"

"헉."

 

아파트가 떠나가라 소리 지르는 김태형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이 새끼는 내외하는 것도 아니고 집 비번을 안 가르쳐줘서 지랄이야!!! 한껏 성난 놈의 목소리가 현관문을 넘어 쩌렁쩌렁 울렸다. 문 열어 임마! 급기야 현관문을 뻥뻥 차대는 김태형에 서둘러 현관으로 달려갔다. 아, 이 무식한 새끼. 문을 차긴 왜 차.

 

버튼 한 번에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린 현관문 앞에는 짜증이 가득한 김태형이 서있었다. 놈은 문이 열리자마자 인상을 있는 대로 팍 찡그리며 코를 막았다.

 

"아 술 냄새. 얼마나 퍼마셨냐?"

"많이 나?"

 

집이 아주 술독이구만. 김태형이 목도리를 풀면서 집안으로 들어오며 툴툴거렸다. 하긴 나도 내가 어제 왜 그렇게 마셨는지 모르겠다. 원래 집에서 마실 땐 약간 기분 좋은 취기가 올라올 정도만 먹고 치우는데 내가 생각해도 많이 마신게 틀림없었으니 그닥 반박은 하지 않았다.

 

"일찍 왔네."

"일찍? 지금이 몇 신데 그 소리가 나오냐?"

 

김태형이 가리킨 시계는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주 떡 실신을 했구나. 나...

 

"내가 몇 분이나 저 시베리아 같은 밖에서 기다린 줄 아냐 진짜. 너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진짜."

"아 미안 미안. 진짜 미안."

 

진심으로 짜증 나는듯한 놈에 바로 김태형의 옆으로 쫄랑쫄랑 다가가 웃는 낯을 들이밀었다. 새끼 진짜 화났나? 추운 걸 잘 못 참는 놈이라 나를 피하려는 녀석을 집요하게 쫓았다. 진짜 화가 났으면 빨리 풀어줘야지 아니면 두고두고 들먹이며 삐졌단 걸 티내곤 하는 놈이라 이런 수고로움은 꼭 필요했다. 손 많이 간다니까 하여간. 방실방실 광대가 아프도록 웃으며 놈의 얼굴을 확인하자 다행히도 그렇게 화난 건 아닌 모양이었다. 다음부터 초인종 한 번 만에 문 안 열면 죽는다. 하며 때리는 시늉만 하더니 김태형이 겉옷을 벗었다. 고작 몇 분 서있었다고 다리가 아프다며 김태형은 소파에 털썩 앉더니 아주 편안하게 자리를 잡는다. 야 나 치료는 언제하게. 리모콘을 찾으려는지 소파 위를 뒤적이는 김태형에게 묻자 일단 씻고 와라. 라며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아 예- 알겠습니다요. 김태형은 일부러 말을 길게 늘여 비아냥대는 나를 여전히 쳐다보지 않은 채로 뽀득뽀득 깨끗하게 씻고 와라. 하고 티비를 틀었다.

 

씻고 나오자 아주 배꼽이 빠져라 쪼개고 있는 놈이 있었다. 아오 새끼 저 경망스러운 웃음소리 좀 봐. 어제 내가 예능을 보며 낄낄댄 것은 새까맣게 까먹은 뒤였다. 야, 나 씻고 왔어. 수건으로 꾸물거리는 김태형의 다리를 툭툭 치니까 그제야 눈물을 찔끔 훔치면서 나를 바라봤다. 아... 재밌는 타이밍이었는데. 아쉬운 듯 놈이 일어나면서 티비를 힐끔거렸다. 진짜 내가 니 환자였어도 이 꼬라지로 할 거냐? 내가 팔짱을 끼고 놈을 노려보자 김태형은 황급히 자세를 바꿨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환자분 주의 하겠습니다- 침대에 누우시죠. 일단. 녀석의 말대로 침대에 엎드리자 김태형은 제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지금 바로 전립선 마사지 하는 게 아니고 일단 관장먼저 해야 하니까 왼쪽으로 누워 봐."

 

곧이곧대로 놈의 말에 따르는 나를 뒤로 한 채 김태형은 뾰족한 쇠바늘이 없는 주사기에 흰 액체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진짜 너, 나니까 이렇게 해주는 거다. 진짜로. 요즘 안 그러나 싶었더니 어눌한 말투가 다시 돌아왔다. 한 문장에 진짜를 몇 번을 쓰는지 그놈의 진짜타령을 하며 김태형은 큰 주사기를 갖고 침대위로 올라왔다. 바지 엉덩이 끝까지 내리고 왼쪽으로 제대로 누워. 뭐? 바지를 내리라고? 눈을 휘둥그레 뜨고선 저를 바라보는 날 김태형은 시큰둥하게 바라보더니 그럼 니는 전립선이 어디 있을 거라 생각했냐. 잔말 말고 빨리 벗어. 나도 바쁜 몸이거든? 하고는 자신을 향해 누워있는 나를 왼쪽으로 돌아눕게 밀어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전립선 마사지 하는 게 아니고 관장약 주입한다니까? 뭔가 잔소리 폭격이 이어질 것 같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나는 알겠어. 알겠어. 하고 바지를 내렸다. 뭔가 다 벗고 있는 것보다 엉덩이만 드러내고 있는 것이 더 쪽팔렸다. 자존심에 조금 밖에 내리지 않은 바지를 김태형이 엉덩이 끝까지 내리라고 쫌! 한 번 말하면 알아들어라 제발. 하고 제가 직접 내 바지를 잡고 밑으로 쭈욱 내렸다. 이제는 내가 영 못 미더운지 팬티까지 직접 벗겨버리고는 옆으로 누운 나의 위쪽 다리를 들어 올려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긴장하지 말고. 힘 빼고 있어."

 

김태형이 긴장을 풀어주려는지 엉덩이를 두어 번 토닥이는데 큰 손이 요새 많이 먹어 살집 있는 엉덩이를 건드리자 탱탱한 살들이 탄력 있게 출렁거렸다. 뭔가 말랑한 감각의 움직임에 나는 베개를 꽉 쥐었다. 힘 풀고… 그렇지, 그래도 힘을 푸려고 노력하는 나를 김태형은 어린애 달래듯 어르더니 풀린 나의 아래로 주사기를 천천히 밀어 넣었다. 낯선 감각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조금 깊게까지 김태형은 주사기를 밀어 넣더니 천천히 피스톤을 눌렀다. 차가운 약물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지고 조금 뒤 주사기가 빠져나갔다. 김태형은 내 팬티와 바지를 한 번에 잡아당겨 입혀주더니 엉덩이를 툭툭 치고 10분만 참았다가 화장실 가라. 말하곤 티비 앞으로 달려갔다. 10분? 그 정도야 뭐 껌이지! 그렇게 생각한 내가 거실에서 티비를 다시 보고 있는 김태형을 속으로 수억 수천 번을 까 내린 것은 불과 3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미친 새끼가, 10분을 어떻게 참으라는 거야. 진짜 거짓말 안치고 대장이 코브라트위스트를 하면서 꿈틀거렸다. 무슨 대장 안에 장어랑 곰치 한 마리씩 넣어놓고 둘이 싸우게끔 하는듯한 광적인 꿈틀거림이었다. 수 년 간 시험 칠 때 긴장감으로 급똥이 마려웠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내 인생 시험 역사로 인해서 단련된 줄 알았던 내 대장의 진입장벽은 관장약 주사 한 번에 점령되고 말았다. 시발 변비인 사람들 다 관장 한 번씩은 하고 똥을 한 번도 제대로 싸본 적 없다고 말하고 다니는 거지? 아마 아닐 걸. 솔직히 이거 맞고 똥 못 싸면 인간이 아니다. 진짜로. 내 통통한 새끼손가락을 건다. 김태형에게 전염되어 진짜를 외치기만 수십 번, 지옥의 불구덩이 같았던 10분이 지났다. 사람들은 소소한 것에 그렇게 큰 행복을 느낀다더니 지금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무슨 300년 묵은 체증이 다 씻겨내려 간 듯했다. 이곳이 천국인가 이승인가 헷갈릴 정도였다. 10분 전보다 조금 수척해진 얼굴로 내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소파에서 자기 진영을 만들어놓고 언제 꺼내왔는지 과자를 뜯고 있는 김태형이 보였다. 그냥 병원에서 할 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잠시 스쳤지만 내가 내 방이었기에 그래도 이불을 죄다 쥐어뜯어놓으며 10분을 견뎠지만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이 10분 참으라고 한다고 하면… 끔찍한 상상에 내가 바르르 떨었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낫지.

 

내가 멀뚱히 화장실 앞에서 서있는 것을 그제야 발견한 김태형이 아, 다 씻었어? 하곤 주섬주섬 일어나 싱크대에서 손을 씻었다. 방으로 가자. 방을 턱짓하는 김태형에 나는 한숨을 한 번 쉬고 방으로 향했다.

 

"엎드리고 있어."

 

이번에는 그냥 엎드리고, 편하게 베개에 얼굴 묻어도 돼. 김태형이 라텍스 장갑을 쭉쭉 늘려가며 손에 착용했다. 장갑 끝에서 손을 떼자마자 짝짝 소리를 내며 신축성 좋은 장갑이 살가죽에 붙었다. 바지 이번에는 뒤쪽만 내리는 게 아니라 앞쪽도 내려야 하는데 그냥 다 벗을래? 노근노근하게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내게 김태형이 물었다. 머릿속에 두 가지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기저귀 가는 것 마냥 엉덩이만 내놓고 불편하게 다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나와, 하반신만 휑하니 비워놓고 불알친구 앞에서 엉덩이를 내놓는 나. 생각해봤지만 둘 다 거지 같았다. 불편한 걸 싫어해 골반바지도 안 입는 나한테 엉덩이만 드러내게 바지를 내린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라 생각해서 후자를 택하긴 했지만 말이다. 왠지 모르게 쪽팔림이 화악 몰려와서 베개에 얼굴을 거의 소멸하다 싶이 묻어버리고 양 팔로 감싸 안았다.

 

푹신거리며 김태형이 침대에 앉는 느낌이 들었다. 침대는 비싼 돈 주고 좋은데 걸사야 잠자리가 엿 같은 일을 면한다기에 큰 맘 먹고 지른 매트리스는 삐걱거리는 소리도 없이 그저 묵묵하게 놈의 무게를 견딜 뿐이었다. 이 와중에도 침대 자랑이나 생각하고 앉았으니 나도 참 답이 없는 놈이다.

 

공기에 닿는 다리가 조금 시려워 이불에 부비적댔더니 가만히 있으라고 한소리를 들었다. 놈의 목소리가 답지 않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뭐지 이 놈. 진짜 돌팔이 아니야? 진료 경험 몇 번 없고 막 아직까지 배우는 단계 이런 거?

 

사실 전립선 마사지라는 게 뭔지 제대로 몰라서 김태형이 무슨 치료를 해준다는 건지 알지는 못하지만 의심병이 도졌다. 떨떠름하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김태형이 내 다리사이에 자리를 잡더니 베개를 하나 가져와 내 허리에 끼워 엉덩이를 위로 향하게 만들었다. 뭔가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로션마냥 쭉 짜이는 소리도 들렸다.

 

"힘 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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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내용은 포스타입에 '애뽈의 사과창고'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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