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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연예계 앙숙커플 김태형 박지민 퀴어스릴러 영화 플로운, 크랭크인 확정

[속보] 김태형 박지민 퀴어 영화 플로운 참여 확정, 배틀호모 실현되나? 

 

앙숙커플? 배틀호모? 지랄 똥 싸고 앉아있네. 대체 나와 김태형이 어디를 봐서 앙숙'커플', 배틀'호모'라는 타이틀이 붙는 건지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팬들이 검색어 정화를 해주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마저 팬 카페에 빼곡히 채워져 있는 그놈의 '뷔민' 대란에 와장창 깨져 버린 지 오래였다. '박'까지만 쳐도 초록창 맨 위로 뜨는 박지민 그리고 그 밑의 박지민 김태형, 이것만으로도 나는 여태껏 분개했단 말이다. 대체 박지민을 치면서 내가 왜. 대체 왜 김태형과 태형♥지민, 배틀호모를 봐야 해!!!!!!!!

 

왜!!!!!!!!!!!!

 

 

 

 


 

 

 

세진이 신호음만 반복되는 전화기를 손에 잡고 불안한 듯 다리를 떨었다. 아 이놈의 배우새끼, 진짜 너 때문에 내가 간암에 걸리고 콩팥이 쪼그라들고 수명이 단축될지도 모르니까 제발 전화 좀 받아라…

 

[※예민한 아이※]

 

혹시나 제가 잘못 건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화면을 들여다봐도 틀림없는 미친개 지민이다. 아무래도 세진은 불안하다. 아니 불안하다 못해 애가 타서 죽을 지경이었다. 하필이면 왜 기사 헤드라인이 '배틀호모'인 건지. (앙숙커플도 문제였지만 배틀호모의 타격이 너무도 강렬했다.) 정말 할 수만 있다면 당장 그 기자를 찾아가 목숨이 아깝다면 시간을 되돌리라고 멱살을 짤짤 흔들어 줄 테다. 기자니까 당연히 자극적인 제목을 붙이는 건 알고 있지만 제 밥줄만 소중한가, 내 밥줄도 소중하다. 이런 3대가 덕계못에 광탈길만 굴러다닐 작자들아. 정말 왜, 어떻게, 어째서, 어떤 이유로 해서 기사 제목이 배틀호모여야 했냐고. 김태형과 같이 언급 되거나 식사 자리에서 김태형의 'ㄱ' 자만 들어가도 밥맛이 떨어진다며 수저를 던져버리는 미친개한테 너는 광견병 예방주사가 아니라 광견병 바이러스를 투하한 거야 알아?

 

아이고 두야, 하고 세진이 전화를 끊을 찰나였다. 여보세요-. 허스키한 미성이 수화기를 타고 넘어오는데 이보다 더 반가운 목소리는 아마 없을 것 같다. 아직까지 정정하셔서 저보다 갈비를 더 잘 뜯어 드시는 할머니의 목소리보다 반가웠다.

 

"지민아~, 어디야?"

 

먹고 살기 위해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세진의 어깨가 오늘따라 초라해보였다.

 

 

 

 

 

 

 

 

 

 

Mundus vult decipi, ergo decipiatur 

세상은 속고 싶어 한다, 그러니 속여주자

 

 

Sebastain Franck

 

 

 

 

 

 

 

Battle! Homo?

w. apple

 

 

 

 

 

 

 

 

지금 내가 해야 할 스케줄은 그 모든 원흉인 영화의 홍보 차, 감독과 배우의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인터뷰다. 이미 나와 김태형만으로도 충분히 이슈가 되었을 텐데 정말 쓸데없는 짓을 하고 앉았다. 그 면상은 정말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보고 싶지 않다고. 진짜 황 감독님은 눈 씻고 좋은 점을 찾아보려야 찾을 수가 없다. 세진이 형이 늘 그렇듯 자기 스타일의 노래를 벤 안 가득히 틀었다. 사람들 말로는 요즘 대세라는 아이돌인 무슨, 소년단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벤 안에서 머리는 눌리지 않게 기대 앉아 무의미하게 폰을 살폈다. 늘 그렇듯이 습관처럼 초록창을 켰는데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실시간 검색어였다.

 

↑1 김태형 입국,↑5 김태형, NEW 김태형 구찌

 

미친 놈. 입국도 존나 요란스럽게 한다. 저번에 찍은 한중 동시 방영 드라마가 대박을 치는 바람에 중국 CF를 찍으러 출국한 것도 알고 있었다. 배우면서 존나 하는 것 마다 이슈인 재수 없는 새끼. 잊고 있었는데 제일 마음에 안 드는 0순위는 김태형이었다. 진짜 하는 꼬라지 하나하나 다 마음에 안 든다.

 

"지가 아이돌이야 뭐야."

 

기어코 기사에 들어가서 본 김태형의 옷 핏이 자존심 상하게도 차마 별로라고는 못할 어울림이라 한 번 더 기분이 팍 상했다. 기다란 다리와 똑 떨어지는 판판한 슬랙스로 매칭된 코디를 나도 모르게 저절로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도 한 10센치, 아니 5센치만 더 컸으면 너 바르고도 남았다. 이 실속 없는 새끼야. 내가 근육이 딸려, 허벅지가 딸려? 키 말고 꿀리는 게 어딨냐."

 

내 팬들은 내 허벅지가 국보급이라고 했다고. 핸드폰에게서의 시선을 돌려서 나의 허벅지를 한 번 쳐다봤다. 스판 재질이 없는 바지임에도 불구하고 판판히 당겨져 탄탄한 허벅지가 눈에 띄는 것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다시 핸드폰에 쳐 박았다. 그리고 얘는 뭐 구찌에 꿀이라도 발라놨나 코디가 떴다하면 온통 구찌다. 이건 뭐 나 돈 많아요 자랑하는 게 아니면 뭐냔 말이다. 구찌 별로 예쁘지도 않더만. 처음에 김태형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찌로 도배를 한 날 나는 생로랑을 입을까 잠시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은 너무 유치해 보일 것 같다는 결론에 금방 흐지부지되고 말았지만.

 

벤이 덜컹거리며 깜깜해졌다.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모양이다. 벌써부터 김태형과 관련된 질문이 쏟아지리란 생각에 목이 턱하고 막혀왔다. 대체 아직 크랭크인조차 하지 않는 영화를 기자들은 어떻게 알고 그렇게 불나게 달려든 것일까 정말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원래 영화라든지 영화의 제작기간에는 코빼기도 관심이 없었던 일반 사람들마저 이 영화에 코를 박고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기사들이 나오는 거겠지. 하지만 아무리 대중들의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타이틀로 자극적인 단어를 쓴다고 해도 이건 좀 아니지.

 

"배틀호모 씨발…"

 

기사를 켜둔 휴대폰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진짜 죽일까. 성질 같아서는 휴대폰을 던져버리고도 남았지만 켜져 있던 기사를 반 쯤 덮으며 발송된 문자 때문에 간신히 휴대폰은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황감독ㅗ

[스토리 대충 흘려도 되니까 부담 없이 인터뷰 하고 와^^]

[사실 나는 인터뷰 안하는 거였어 쏘리!]

 

음, 아무래도 휴대폰의 수명연장은 조금 힘들 것 같아보였다. 망할 놈의 감독새끼. 나에게 똥을 뿌려? 나의 절규가 울려 퍼지는 벤 안에서 세진이 형이 익숙한 듯 노래 볼륨을 키우며 아무렇지 않게 운전을 계속했다. 지하 4층까지 내려와서야 차를 주차할 수 있었다. 미칠듯한 분노도 잠시, 원래 시사회가 아니면 인터뷰에 코끝도 내밀기 싫어했던 사람인걸 알기에 금방 평온한 마인드를 되찾았다. 벤 안에서 잠결에 인터뷰 스케줄을 흘려들었던지라 어디에서 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꽤 유명한 잡지사다. 제대로 듣지 조차 않은 내가 미련 곰탱이지. 잡지사에 황감독이 제 발로 걸어들어 올 리가.

 

짜증스레 머리를 쓸어 넘기며 세진이 형이 열어준 유리문 안으로 들어갔다. 패션 잡지사다 보니 인터뷰어도 꽤나 패션업계 사람처럼 스타일리쉬 했다. 걸어오는 나를 발견하고 인터뷰어가 보랏빛으로 염색한 머리를 찰랑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지민 씨!"

"안녕하세요."

 

꽤 단단한 목소리로 함박웃음을 띄며 인터뷰어가 내게 다가와 악수를 정했다. 걸어올 때마다 성격만큼이나 상쾌한 향수냄새가 확 풍겨왔다. 만나서 반가워요 지민 씨! 이렇게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실지 몰랐는데 너무 감사해요. 꼭 외국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듯한 억양이 생기발랄한 음성이 귓가에 꽂혔다.

 

"제 소개가 늦었죠- Billion 코리아 에디터 강지영이에요."

"아, 네."

"오늘 할 인터뷰는 지민 씨가 최대한 편하시게끔 제일 간단하게 진행될 거예요! Billion이 지민씨를 위해 특별 제작한 세트도 안쪽에 마련되어 있답니다. 아 참! 우선 이렇게 저희 매거진에서 만나 뵙게 돼서 정말 영광이란 말 드리고 싶어요."

 

꼭 아까 벤 안에서 들었던 힙합그룹의 랩처럼 빠르게 이어지는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강지영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인터뷰어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연신 싱글벙글한 웃음을 유지했다. 나는 그녀가 정말 즐거워서 저렇게 웃고 있는지 아니면 비즈니스 적으로 웃고 있는 건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만일 후자라면 정말 귀찮고도 힘든 인생을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 할 터였다.

 

"정말 간단한 인터뷰를 하러 오셨지만 Billion에서 사진촬영은 떼어낼 수 없는 부분인지라 컨셉 포토 딱 몇 장만 찍을게요. 빨리 끝날 거예요!"

 

꼭 자신이 사진을 찍어야 하는 것 마냥 안타까운 표정을 짓던 지영이 내 뒤에서 안절부절 거리며 서성이는 메이크업 담당 누나에게 이리오라며 손짓했다. 대기실은 저기고 바로 앞에 세트장이 있으니까요 천천히 준비하시고 나오셔도 돼요. 그럼 조금 이따가 봬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바람처럼 사라진 지영에 나는 아까 가르쳐준 대기실로 향했다. 심플한 검정색 의자에 앉자마자 붓들과 쿠션들이 내 얼굴 쪽으로 다가왔다. 눈을 감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민아 메이크업 다 끝났어.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원래 입고 왔던 옷에서 자켓 하나만 더 걸치고 대기실에서 나오자 이미 세팅을 마친 카메라들이 세트장 주변을 한가득 에워싸고 있었다. 카메라 감독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를 발견하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지민 씨, 오늘 촬영은 그냥 단정한 프로필사진 찍는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약간… 신경질적이고 예민해 보이는 그런 예민미가 있었으면 좋겠어.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네. 바로 촬영할까요?"

 

역시 감독이 맞았는지 그는 내게 이런저런 요구를 해왔다. 아까 인터뷰어의 말대로 그렇게 어렵고 중요한 촬영이 아닌 듯한 요구에 뒷목을 잡고 고개를 살풋 까딱이며 바로 촬영에 들어가겠노라 말했다. 내가 표현하는 동작이나 표정들이 자신이 생각했던 느낌과 맞았는지 좋아, 그렇지- 하는 말 몇 번 만에 촬영은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말과 동시에 세진이 형이 가져다 준 생수를 한 모금 마셨다. 조금 쉬었다가 할래? 하는 형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냥 빨리 끝내자. 인터뷰 바로 할게.”

 

내가 건넨 생수통을 받아든 세진이 형이 알겠다며 뒤를 돌아 저기요! 하고 외쳤다. 후다닥 달려온 관계자에게 바로 인터뷰 진행한답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 아, 이쪽으로 오세요! 하는 답변이 돌아왔다. 관계자를 따라서 향한 인터뷰 장소는 또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꾸며져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세트장 안인데도 꼭 햇빛이 창문으로 쏟아져 내리는듯한 연출을 해둔 공간은 꽤 화사해보였다. 그곳에서 나는 자신을 강지영이라고 소개했던 인터뷰어를 또 만났다. 질문들로 보이는 종이를 보고 있던 그녀가 나를 발견하고 종이를 치웠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금방 또 만났네요! 하고 처음 봤던 그 웃음을 지어보였다. 여기 앉으세요, 하고 가리킨 의자에 내가 앉자 나를 따라 지영도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럼 인터뷰를 시작해도 될까요? 정중하게 물어오는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동의에 바로 녹음기를 킨 지영이 입을 열었다.

 

“저희 Billion에서 정말 대단한 배우 분을 모셔왔는데요 바로 지민 씨 입니다. 바로 우리나라 최고의 배우. 이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죠! 왜냐하면 사실이니까요. 안방극장을 책임지던 국민 남친에서, 청춘 시리즈물이었던 ‘화양연화’를 찍고 국민 첫사랑이 되었는데 아쉽게도 ‘화양연화’가 작년에 끝이 나게 되었어요.”

 

지영이 너무 아쉽네요. 하면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뜸을 들인 시간이 무색하게 다음 대본을 읽어나갔다.

 

“모두 애틋한 지민 씨의 모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이른 바 '지민 앓이'를 하며 슬퍼하는 팬들이 많았는데 지민 씨가 액션 스릴러 물인 ‘The star’로 완벽하게 이미지 변신을 한 영화를 내면서 화제가 되었었죠.”

“네, 예전에 다른 인터뷰에서도 언급 했었던 것처럼 화양연화가 pt.2 였을 때 제가 The star 대본을 받았어요. 물론 화양연화에서의 상처받은 소년 이미지도 마음에 들었지만 또 새로운 모습을 더 보여드리고 싶어서 영화에 참여했죠. 처음 해보는 액션연기라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많은 사람들께서 좋아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예상에서 한 끗도 벗어나지 않는 질문에 나는 기계적으로 인터뷰에 관한 대답을 줄줄 읊어 내렸다. 내 말에 동감한다는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 지영이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지민 씨 여태껏 찍어 오신 많은 독립영화에서도 주로 애틋하고 슬픔이 뚝뚝 떨어지는 애절한 연기를 해오셨는데 이번에 이미지 변신을 해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모든 분들이 예상하지 못했는데 또 이걸 완벽하게 소화해 내셨네요. 역시 대한민국 탑배우는 다르네요.”

 

지영은 그 뒤로도 근황이나 패션 등 잡다한 질문을 던졌다. 슬슬 본론이 나올텐데…라고 생각할 즈음 지영이 내 눈치를 살피며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말투로 질문을 시작했다. 앞의 질문은 그저 간단하게 형식상으로 물어 본 질문이었다는 듯 ‘사실 저희가 지민 씨를 Bilion에 부른 중요한 이유가 있죠. 막 빙글빙글 돌려 말하는 데는 볼 일 없으니까 저희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라고 운을 뗐다. 질문을 하는 본인도 꽤 긴장되는지 큐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지금 대한민국이 지민 씨 때문에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인터넷 인기 포털사이트에 지민 씨 이름이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요. 

 

올 게 왔구나. 그냥 딱 든 생각은 이것이였다.

 

"심지어 전 세계 팬들도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전 세계를 지민 씨께서 뒤흔들고 계세요. 바로 얼마 전에 났던 기사 때문인데요. 우리나라의 또 한 명의 탑배우 김태형씨와 함께 플로운이라는 퀴어스릴러 영화에 크랭크인 확정되었다는 기사예요. 이거 묻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요, 우선 이 기사가 사실인가요?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고 계세요."

 

어마어마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내 대답을 기다리는 지영의 눈이 오직 내 입술만을 향해 있었다. 전 국민의 호기심에 드디어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이걸 내 입으로 직접 하게 되다니. 아, 나 진짜 황감독 마음에 안들어. 다시 황감독 작품 하나 봐라. 만약 다시 한다면 그 땐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사실이에요. 배우 김태형씨와 함께 출연 확정 맞습니다. 물론 퀴어 스릴러물인 것도요."

 

지영과 내 주위에 있던 스텝들이 모두 숨을 크게 들이쉬는게 느껴졌다. 나도 내 결정에 스스로 놀랐는데 이 사람들은 오죽할까. 그런 생각을 하니 뭐 이해할 만 했다.

 

"지금까지 무수한 의견들이 있었어요 정말, 뭐 김태형이 우리가 아는 그 김태형이 아닐 것이다. 부터 시작해서 대국민 단체로 같은 개꿈을 꾸고있다, 기자가 망상 드라마를 쓴 것이다. 등등 정말 많았는데 이제야 진실을 알게 되었네요. 그럼 안 물어볼 수가 없겠죠- 이 영화에 출연 결정을 한 이유가 뭔가요?"

"음, 아마 이 잡지가 나올 때 즈음이면 이미 영화사에서 간략한 줄거리와 역할을 공개한 뒤겠죠?"

 

지영이 맞아요 이 잡지가 나갈 때면 구독자 분들께선 이미 줄거리를 포털 사이트를 통해서 접하셨겠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말하라는 듯 이글거리는 눈빛은 덤이었다.

 

"제 역할이 피아니스트인게 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피아노를 친 적이 있었거든요.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했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피아니스트 역은 해본 적이 없어서 옛 기억을 되살려 한 번 피아노를 다시 배워보고 싶었어요."

"오, 피아노를 배우셨다니 처음 듣는 사실이네요! 언젠가 꼭 지민씨의 연주를 들어보고 싶어요. 그런데 지민 씨."

 

이 영화를 출연 결정 할 당시 상대 배우분이 김태형 씨라는 것은 알고 계셨나요? 꼭 국가 기밀을 파헤치러 온 비밀 요원처럼 비장해보이기까지 한 지영의 말에 나는 그저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원하는 답을 할 때까지 이 사람은 내게 질문을 던지리라. 그냥 빠르게 답해주는 것이 마음이 편할 듯 싶었다.

 

"네, 물론이죠. 이 영화가 저와 김태형 씨를 사전에 주인공으로 먼저 픽해두고 제작된 영화라고 하더라고요. 알고 있었습니다."

 

놀라 입을 떡 하고 벌리고 있는 지영이 충격에서 헤어나오기도 전에 나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김태형 씨가 상대역이라는 것과 상관 없이 저는 이 작품의 전개와 완성도만을 보고 결정을 했어요. 대본을 보자마자 딱 제가 찾던 역할이라고 느꼈거든요."

 

내가 생각해도 진짜 개풀 뜯어먹는 소리였다. 영화의 완성도니 뭐니, 내가 김태형이 상대역인데 심지어 사랑관계로 나오는 영환데 작품이 좋다고 그걸 넙죽 받아들였겠냐고. 좆같은 성질머리 때문에 저지른 일을 소속사가 부랴부랴 커버하느라 막장드라마보다 더 한 피드백이 나온 거지. 한참 뒤, 드디어 정신을 차렸는지 지영이 질문지를 떨리는 손으로 넘겼다.

 

"네, 그렇군요…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영화 제목 플로운은 어떤 의미인가요?"

 

차 안에서까지 달달달 외워왔던 질문이 피날레로 찾아오니 더할 나위없이 반가웠다. 나는 굳어있던 입꼬리를 싱긋 말아올리며 마지막을 장식했다.

 

 

 

"플로운은 영어 fly의 과거분사예요 날았었던, 의 의미로 다시 말해 추락을 뜻합니다. 즉 천재 피아니스트로 나오는 박지민의 추락이죠."

 

 

 

 

 

 

 

 


 

 

 

 

 

 

내 말의 파급력은 생각보다 상당했다. 아니, 사실 이렇게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을 줄 알고 있었다. 설마, 내가 박지민인데. 

 

Billion에서는 ‘단독’이라는 수식어를 등에 업고 자신들의 잡지가 나오는 날까지 엄청난 언플을 펼쳤다. 물론 영화의 줄거리가 뜨고 나서 대중들의 내 인터뷰에 대한 관심사가 더욱 증폭되었지만 말이다. 간단명료하면서도 정말 영화를 잘 축소시켰다고 볼 수 있는 영화의 예고 줄거리에서의 나와 김태형은 내 입으로 차마 담기 힘든 그런 애정의 관계였으니 대한민국이 패닉에 휩싸이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했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 나와 김태형이 앙숙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도 있으려나. 아, 또 내가 이렇게 자극적인 언어로 인터뷰를 한 것은 이 인터뷰를 어쩔 수 없이 챙겨보게 될 김태형을 겨냥한 것도 있었다. 녀석의 얼굴이 꼭 바퀴벌레를 씹듯이 일그러질 모습을 생각하니까 나도 모르게 속이 뻥 뚫리는 듯 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행복감은 얼마 못 가 치가 떨리는 분노로 다시 날 찾아왔다. 드디어 대망의 크랭크 인이었다.

 

영화를 시작하기 전 어떤 영화든지 간에 꼭 거치는 의식이 있다. 아무 탈 없이 영화가 끝나기를, 또 영화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고사는 이 영화계에서 꼭 거쳐야 할 문화로 자리 잡았다. 괴담처럼 돌고 있는 영화계 안 좋은 사건사고도 이러한 고사와 관련된 일이 참 많다. 그다지 미신이라든지 그런 입소문들을 믿지 않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뭔가 굉장히 그 고사와 관련된 괴담이 꺼림칙했다. 진짜 최초로 영화가 끝날 때 까지 견디지 못하고 내가 하차를 선언하는 영화가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 글 중 나 또는 김태형이 이 영화 중간 즈음 하차한다는 어마무시한 추천이 달린 글이 있던데 곧 그 글이 성지순례 장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근데 진짜 김태형 저 새끼 완전 또라이 아니야?

 

“야 씨발 손 안 떼?”

 

카랑카랑하게 공간을 울리는 내 목소리에 김태형이 고개만 슬쩍 돌려 나를 쳐다봤다. 왜 불렀냐는 듯이 뻔뻔하기 짝에 없는 표정을 본 순간 머릿속에 있는 한계선의 끈이 뚝 하고 끊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사 치룰 때 쓰는 돼지 머리를 존나 조물거리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냐고. 그래놓고는 내가 왜 자기한테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가 없다는 식으로 나를 쳐다보는 김태형이다. 영화 한두 번 찍어보는 아마추어도 아닌 새끼가 신성시 여겨지는 돼지를 돼지 주물럭으로 만들어버릴 기세로 여기저기 만져대는데 소리치지 않고 배기겠냔 말이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으며 놈의 앞으로 다가갔다. 꼭 쿵쿵거리는 소리가 날 듯이 제 앞으로 다가오는 나를 보면서도 김태형은 끝끝내 돼지머리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진짜 저 새끼는 지구인이 아니라 저 멀리 깐따삐아 은하계의 콘소메 행성에서 온 것이 틀림없었다. 

 

“내 말 안 들려? 손 떼라고.”

“왜.”

 

정말 모르겠다는 듯 눈을 느리게 껌뻑이며 되묻는 김태형에 목구멍이 턱턱 막혔다. 고사 한두 번 지내봐? 지금까지 돼지 대가리 그렇게 주무르는 새끼 너는 본 적 있냐? 경멸에 찬 얼굴로 쏘아붙이는 나를 보더니 김태형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이태까지 나 계속 얘 만졌는데.”

“뭐?”

“매 영화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난 내 영화 고사 치룰 때 쓰는 돼지 머리 만졌다고.”

 

입을 떡하니 벌리고 굳어있는 나에게 시선을 잠시 고정하던 김태형은 눈썹을 한 번 들었다 올리면서 너는 안 그랬나보네. 내가 돼지 머리 만지면 감독들은 다 돈 들어올 것 같다면서 좋아했는데. 하고 돼지 머리에서 손을 거뒀다. 

 

“되게 답지 않게 순진하네. 돼지 머리가 한 번 만진다고 무슨 일이 생기겠냐? 그냥 도축장에서 주워온 거 입 꼬리에다가 불 몇 번 쏘아주고 웃는 돼지 만들어서 거기다 절하는 게 단데.”

“미친놈….”

“한 번 만져봐. 좀 누린내 날 것 같지만 꽤 사람 피부 같고 썩 나쁘진 않아.”

 

주먹을 꽈악 말아 쥐고 분노로 귀 끝이 빨개진 나를 유유히 지나가는 김태형에 나는 내적 비명을 참을 수 없었다. 모 드라마의 주인공 이종석이 지금의 나와 눈이 마주친다면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러대는 나는 정말 저 뻔뻔한 얼굴 판대기에 주먹 한 방을 꽂아 넣고 싶었다.

 

고사를 치루기도 전에 이미 기분이 엿 같아진 배우들 덕분에, 아니 어쩌면 오직 나 때문에 고사 분위기는 꽤나 냉랭했다. 분위기를 못 알아챌 정도로 눈치가 없는 편도 아닌 놈이지만 정말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혼자 평온한 김태형을 보고 있자니 더 울컥울컥 화가 치밀었다. 꼭 내 전방 100m 이내로 검은 오로라가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참고 또 참으면서 김태형이 주물럭거린 돼지 머리에 절을 하다가 나는 깨달았다. 이 영화 나 진짜 끝까지 못 찍겠구나. 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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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예전에 쓴 글이라 지금 읽어보니 유치한 것 같네요ㅎㅎ

그때 재밌게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이 다음 얘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저도 기억이 안 나서 그때 메모를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혹시나 찾게 된다면 (그리고 원하시는 분이 한 분이라도 계시다면...?) 정리글을 올려볼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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